2024. 1. 13. 10:02ㆍ카테고리 없음
어느덧 믿기지 않는 불혹의 경계선 안에 들어와 버리고, 라떼도 아주 진한 라떼를 탔을 만큼 정말 열심히 살았다 자부하는데 어쩌다 보니 인생이 리셋돼 있다. 0에서 시작하는 것도 감사해야지 하며 강박적으로 긍정을 주입해 보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이렇게 속살을 드러내는 글을 대외적으로 써 본 적이 있던가 싶어 두렵기도 하지만 티스토리를 처음 접한 나에게 이곳은 뭔가 아는 사람들만 아는 비밀스러운 섬 같은 느낌이라 이곳에서만큼은 좀 솔직한 얘기를 써 보고 싶어 용기를 내 본다.
햇수로 6년째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서도 가능하면 개인적인 얘기를 배제하고 정제시켜 영상을 만들고 있는 내게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영상을 전공했다. 드라마에 미쳐있었고, 지금까지도 시청자로 미쳐있다. 관련 분야에서 일도 몇 년간 했었지만 시대적 분위기와 개인적 성향까지 맞물려 하루 두세 시간 쪽잠을 자며 주 1회 퇴근을 하며 일한 덕에 나름 큰 수술을 하고 번아웃이 와 포기해버렸다.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게 이런 것이려나...
너무 좋아하던 일인데도 현장에 가면 숨이 막혀 할 수가 없어 포기하고 나니 항상 후회가 발목을 잡았다.
일을 포기하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보았지만 잘되지 않았고 수없이 도전만 하다 보니 금세 30대 후반이 되었다.
그 새 위상을 높여가던 유튜브를 보며 나도 언젠가 꼭 내 채널을 만들어 영상을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다 2019년 1월에 첫 영상을 올릴 수 있었다. 7년여 만에 처음 만진 편집기였지만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가능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생계도 유지하면 좋겠다 싶어 여행, 일상, 요리, 스톡 영상, 베이커리 채널 등 수많은 채널들을 만들어 올려봤지만 크게 반응이 오는 게 없었고, 지금은 여행 채널 한 가지만 운영하고 있다.
세상에는 무슨 일을 하든 쉽게 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그렇지 못한 나 같은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렇다. 나는 영상을 만드는 데 오래 걸린다. 기획, 촬영, 출연, 편집, 그래픽디자인, 채널 운영 등 모든 것을 혼자 한다고 감안해도 편집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생계를 위한 근로활동과 병행할 때는 평균 한 달에 1편, 생계를 멈추고 영상에 올인할 때는 평균 일주일에 1편 정도 올리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품은 많이 들고 주목은 받기 힘든 주제인 "여행"을 고른 나의 탓도 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그런지 주변 사람들의 타박에도 대충해서 올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넷플릭스 급 영상을 제작한다는 건 아니지만 오디오, 자막, 색보정 등 그동안 배운 것과 봐 왔던 기본 세팅 값에 충족되지 않으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도 초반보다는 많이 힘을 뺐다) 그러다 보니 의자에 앉아 싸우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건강도 나빠지는데, 생각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늘 맥이 빠진다. 그렇게 다시 즐거움으로 시작한 영상은 애증의 관계로 날 질질 끌고가고 있다.
요즘 들어 또 유튜버 생활 정리에 대한 뉴스가 많이 보인다. 붐을 일으켰다 한 번 거품 빠지고, 한동안 안정적으로 가는가 싶더니 요즘 눈에 띄게 정리하는 분위기인가 싶다. 그런 뉴스를 보며 나도 하루빨리 꿈에서 깨어 현실에 뛰어들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든다. "한 달을 죽어라 했는데 구독자 10,000 명이에요." "일 년을 해도 연봉 100만 원이라 그만하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혼자 있는데도 쥐구멍을 찾게 된다. 5년을 해서 겨우 얼마 전에 구독자 천 명을 넘기고, 수익화는 앞으로도 기대할 수 있을지 깜깜한 나에게 그들은 "그걸 여태껏 왜 했어요?"라고 반문하는 기분이 든다. 이제까지 쏟아부은 시간과 공이... 그리고 열심히 찍어두고도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외장하드 속 수많은 영상들이 너무 아까워 그냥 내 인생에 대한 기록이자 취미라고 생각하자며 달래가며 버텨 온 시간들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취미로 하기에 너무 많은 품과 정신적 압박이 주어지기 때문에...
늘 새해가 되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더 열심히 살아보겠노라 다짐하게 된다. 올해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유튜브 채널에 힘쓰면서 블로그도 시작해 보자 계획하고, 이곳에 블로그를 시작하게 됐다. 타고난 역마살에 이 나이까지 꾸준히 하고 자신 있는 게 여행이라 여행기를 써 내려가 보기로 했다. 분명 영상으로는 할 수 없는 자세한 이야기들을 더 꺼내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돼 기대된다. 몇 년째 투명 자전거에 앉아 헛발만 계속 구르는 기분인데, 언젠가는 이 보이지 않는 페달로 원하는 목적지에 잘 도착해있었으면 좋겠다.
해가 갈수록 살아가는 게 정말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부디 이 블로그를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조금은 덜 고단하기를 바라본다.